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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이족의 명칭과 유래

중국에서는 고대의 주변 국가들에게 중국을 중심으로 두고, 동서남북의 방위에 따라 명칭을 붙여 구분하였는데, 동쪽에 사는 종족들을 동이(東夷)라 하였고, 서쪽에 사는 종족들은 서융(西戎)이라 하였으며, 남쪽에 사는 종족들을 남만(南蠻)이라고 하였고, 북쪽에 사는 종족들을 북적(北狄)이라고 부름. 따라서 '동이'란 특정한 민족 개념이 아니라 방위개념이 첨가된 한족에 대한 상대적 개념의 동방 이민족에 대한 범칭.

시기적으로는 청동기문화가 발달하던 때, 지리적으로는 발해만을 끼고도는 중국 동북지방, 즉 남만주와 요동반도 산동반도 등지에 하나의 문화권이 형성되었는데, 이는 중국 중심부의 한족문화권과 달라서 이를 동이문화권으로 부름. 동이족에는 예(濊)·맥(貊)·한(韓) 계통의 우리 민족(나중에 고조선 고구려 부여)과 읍루 등이 속함.

옛 중국문헌에는 이 문화권의 사람들을 동이라 불렀는데, 夷라는 글자는 ‘큰 활을 가진 사람’, 즉 활을 잘 만들고 잘 쏘는 동방인의 특징을 드러냄. 물론 ‘夷’자는 오랑케라는 뜻이 대표적이지만 ‘평평하다’, ‘온화하다’, ‘기뻐하다’, ‘크다’ 등 여러가지 뜻으로 쓰일때가 있음.

 2. 동이족의 지배와 인물

중국의 고대전설에 의하면 동이족은 중국이 진나라 한나라에 의해 통일이 될 때까지 한족과 더불어 중국의 고대국가를 이끌어가던 주역이었음.

(참고 : 중국고대사 : 하-은-주-춘추-전국-진-한)

중국의 전설적 시조인 황제와 전쟁을 벌인 치우(蚩尤)는 동이족으로서 비와 구름을 부르는 신통력을 가졌는데 죽은 뒤에는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가 되었다고 하며 후세인들은 그를 전쟁의 신으로 받들어 숭배하였다.

또 동이족 중에는 하나라의 제후로서 산동의 유궁에 살던 예(?)라고 하는 백발백중의 궁수가 있었는데 곡식을 타 죽게하는 열 마리의 태양까마귀 중에서 아홉 마리를 쏘아 떨어뜨리고 온갖 요괴들을 제거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해준 공으로 죽은 뒤에 신으로 받들어졌다.

전설상 중국인에게 처음으로 고기잡이와 사냥 목축을 가르치고 팔괘와 문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복희씨, 상고시대의 성왕인 순임금 등이 모두 동이족이다.

중국 고대인 하 은 주 삼대 중에서 은나라는 동이족이 지배했던 나라로 알려짐

그후 주나라가 들어서면서 중국 동북지방의 동이족이 요동과 한반도로 이주해갔는데 은나라 지배층의 일부가 고조선으로 들어와 새로운 지배세력이 된 것이 기자조선.

주나라 후기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동이족이 살았던 중국 동북지방의 나라들(한 제 노 연나라)에서 공자 맹자 관자와 같은 제자백가들이 배출되었으니 유가 법가 음양가의 본고장이 바로 이곳임.

공자와 맹자의 어록 중에 동이족을 칭송하고 공자 자신이 뗏목을 타고 군자의 나라인 구이(조선)으로 가고 싶다고 한 것처럼 공자도 동이문화에 깊은 영향을 받았음.

중국이 기원전 3세기에 진나라 한나라에 의해 통일되면서 중국 동북지방의 동이족은 대부분 한족에 흡수 동화되었으나 그 일부는 한반도로 이주해와 고조선과 삼한사회의 발전에 큰 자극을 주었다.

한국인의 조상은 원래부터 한반도에 있었던 사람들과 중국 동북지방에서 이주해온 동이족이 합쳐져서 형성됨. 결국 한국인은 동이족의 주류로서 중국문헌에는 동호(東胡), 예(濊)·맥(貊)·한(韓)으로 나타남.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김 윤제 교수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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